“손해배상, 제대로 알고 받자” 3부 : 같은 사고, 다른 청구권 — 계약상 책임과 불법행위 책임

타인의 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그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되죠?
인테리어 공사를 맡겼는데 배관을 잘못 시공해서 아랫집에 누수 피해가 났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집주인은 시공업체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그 근거를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고, “과실로 손해를 입혔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사건인데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두 갈래 길이 열려 있는 셈입니다.

실무에서 손해배상 사건을 다루다 보면, 의뢰인들이 “계약 위반이니까 당연히 계약 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계약상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그와 별개로 고의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도 물을 수 있습니다.

어떤 청구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멸시효, 입증책임, 지연손해금 기산일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이 구분을 정확히 아는 것이 손해배상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아래에서 차분히 설명드릴게요.

1. 계약상 책임(채무불이행책임)이란?

민법 제390조가 근거입니다.
당사자 사이에 계약이 존재하고, 그 계약에서 정한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책임입니다.
매매계약에서 물건을 제때 인도하지 않은 경우, 도급계약에서 하자 있는 시공을 한 경우, 위임계약에서 수임인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핵심은 “계약관계”가 전제된다는 점입니다.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이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2. 불법행위 책임이란?

민법 제750조가 근거입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며, 계약관계가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교통사고, 폭행, 명예훼손, 그리고 앞서 예로 든 누수 사고에서 아랫집 피해자가 시공업체를 상대로 직접 청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랫집 입주자는 시공업체와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계약책임이 아니라 불법행위책임으로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두 책임의 실무상 핵심 차이

구분계약책임불법행위책임
전제계약관계 필요계약관계 불필요
소멸시효원칙 10년(민법 162조)안 날로부터 3년, 행위일로부터 10년(민법 766조)
입증책임채무자가 자신에게 귀책사유 없음을 입증원칙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입증
지연손해금 기산일이행기 도과 시점부터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부터
손해배상 범위통상손해 + 예견 가능했던 특별손해(393조)763조에서 393조 준용, 실무상 판단 기준은 유사하나 사안별 차이 존재

실무에서 가장 크게 체감되는 차이는 입증책임입니다.
계약책임에서는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채무자(가해자 쪽)가 증명해야 하지만, 불법행위책임에서는 반대로 피해자가 상대방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계약관계가 존재하는 사안이라면 계약책임 구성이 피해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3. 하나의 사건에서 둘 다 성립할 수 있다 — 청구권 경합

앞의 누수 사고 예시로 돌아가면, 집주인(도급인) 입장에서는 시공업체와 계약관계가 있으므로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 요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법원은 청구권경합설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두 청구권 중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거나 함께 주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손해배상을 이중으로 받을 수는 없고, 어느 한쪽에서 만족을 얻으면 다른 쪽 청구권도 그 범위에서 소멸합니다.

4. 실무에서는 어떤 청구원인을 선택해야 유리할까?

사건을 맡다 보면 이 선택이 생각보다 소송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사안이라면, 계약책임의 10년 시효가 불법행위책임의 3년 시효보다 훨씬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반대로 손해의 발생 시점을 명확히 못박아 지연손해금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다면 불법행위 구성이 유리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과실을 입증할 자료가 부족한 사안이라면, 계약관계가 존재하는 한 계약책임 쪽으로 구성해 입증책임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결국 정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사안의 사실관계와 확보 가능한 증거, 시효 경과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져 청구원인을 정하는 것이 실무의 기본입니다.
소장을 작성할 때 두 청구권을 예비적·선택적으로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장 자주 다툼이 벌어지는 지점인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이 글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바탕으로 한 정보이며, 개별 사안의 사실관계나 지역별 지침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으니 상세한 것은 법률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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